'사망자 줄이기'로 정책의 무게중심 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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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13. 오후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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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 대구 병원장 4인의 제언… 코로나 이렇게 대응하라

정호영 경북대병원장 "경·중증자 안 나눈게 대구 패착… 수도권 생활치료센터 미리 정하라"
김성호 영남대병원장 "병원들 지역별 채팅방 만들어 병상·환자현황 실시간 공유하라"
서영성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장 "전문가 의견 수용이 우선… 정치적 판단땐 대량발병 우려"
최정윤 대구가톨릭대병원장 "의료장비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 비상상황 대비 생산체계 구축해야"


경북대병원·영남대병원·계명대 대구동산병원·대구가톨릭대병원 등 대구의 4대 대학병원 병원장들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신규 환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것과 관련, "대량의 감염자가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모든 환자를 입원시켜 치료한다는 생각을 빨리 버리고 경·중증도를 구분해 중증 환자 위주로 입원 치료해야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호영 경북대병원장, 김성호 영남대병원장, 서영성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장, 최정윤 대구가톨릭대병원장


정호영 경북대병원장, 김성호 영남대병원장, 서영성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장, 최정윤 대구가톨릭대병원장 등 4개 대학병원장은 12일 현재 전국 우한 코로나 확진자의 75%(5867명)가 몰려 있는 대구에서 한 달 가까이 감염 확산 억제와 환자 치료를 지휘해온 '우한 코로나 야전 사령관'들이다. 이들은 본지 인터뷰에서 "대구에서도 첫 일주일에서 열흘간은 무조건 환자를 입원시키기에 급급하다가 나중에 감당이 안 돼 낭패를 봤다"면서 "경증 환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중환자가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앞으로도 임기응변이 필요한 순간이 수시로 찾아올 것"이라면서 "서울과 수도권은 대구가 앞서 겪은 사례를 참고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중증 환자 나눠 대응해야

지난달 18일 대구에서 우한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하자 환자들은 경·중증 관계없이 모두 큰 종합병원으로 몰렸다. 병상이 부족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 환자가 자가 격리 중 사망한 사례가 잇따랐다. 정 병원장은 "첫 일주일간 별다른 증상이 없는 환자도 음압 병실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병원장은 "대구에는 지역 내 의사 100여 명이 자원봉사로 자가 격리 중인 확진자들에게 매일 전화해 병세를 확인하고 있다"며 "이처럼 전문 인력이 격리 대상자를 주기적으로 체크해 적절한 의료기관에 배분하는 시스템을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병원 내 의료진 감염' 일어나면 시스템 붕괴

다행히 대구에선 아직 병원 내 의료진 감염 사례가 안 나왔다. 정 병원장은 "메르스 학습 효과"라고 말했다. 최 병원장은 "사태 초기부터 의료진끼리는 '묵언 식사'를 하는 등 철저하게 대비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서 병원장은 "방호복 수급이 어려우니 '레벨 D' 방호복 착용 기준을 완화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안 된다"며 "대응 시스템 보호를 위해서라도 과할 정도로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병원장은 "현행법상 전공의는 주 8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는 것도 큰 제약"이라고, 김 병원장은 "정부가 근무 시간 규정을 당분간 예외로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 간 소통 네트워크로 정보 공유해야

대구 지역 주요 병원장은 이번 사태 초기부터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김 병원장은 "병상이 필요한 환자 1800여 명을 다른 지역 병원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채팅방에서 소통한 덕분"이라고 했다. 최 병원장은 "의견이 갈릴 수 있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에 권한을 행사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 병원장은 "평소 잘 안 쓰는 에크모(ECMO·산소 공급 장치)가 중증 환자들에게 대량으로 쓰이기 때문에 담당 의료진이 수량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병원에 재분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 장비, 음압 병실 부족 사태 대비해야

서 병원장은 "동산병원은 하루 방호복이 500벌까지 필요했는데,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애가 탄 적이 많다"며 "여전히 전동식 호흡 보호구(PAPR)가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다. PAPR은 우주복처럼 얼굴 전체를 덮어씌우는 후드를 입고, 그 안으로 공기를 넣어주는 보호구다.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필요하다. 최 병원장은 "준비해놓을 수는 없더라도 감염병 유행 사태가 오면 즉각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병원장은 "음압 병실도 전국에 있는 포터블 음압기(이동형 음압기) 현황을 파악해 필요한 병원에 몰아주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 존중해달라

병원장들은 사태 초기 감염원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하지 않은 것에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김 병원장은 "전염병마다 성격이 다른데도 정부가 메르스 때 생긴 규칙을 고집해 의료기관에서 현실적인 대응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서 병원장은 "전문가 의견을 존중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며 "특히 감염병 예방 대책은 과도할 정도로 해야지 '이 정도 하면 되겠지' 하다간 큰일 난다"고 말했다.

〈대구 특별취재팀〉

팀장=조중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박원수·최재훈·오종찬·권광순·표태준·류재민·이승규 기자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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